KIM DA EUN
Artist Statement
Analog
‘아날로그 시리즈’는 디지털 시대의 빠름과 편리함 속에서 잃어버린 느림과 정성의 가치를 되찾고자 시작되었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삶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주지만, 그 속도에 맞추다 보면 마음의 여유와 감정을 잃어버리기 쉽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은 우리의 일상을 바쁘게 만들고, 마음속 여유를 점점 사라지게 한다. 육아와 가사, 직장에서 쏟아지는 정보와 끝없이 빠르게 변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종종 공허함과 답답함을 느꼈다. 이런 순간, 필름카메라로 신중히 사진을 찍고 현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찾기 위해 카세트테이프를 되감던 기억은 단순히 불편한 작업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따뜻함은 내가 잃어버린 감각을 일깨우고, 마음의 균형을 되찾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이 시리즈는 이러한 경험에서 출발한다.
작품 속에서는 필름카메라, 카세트테이프, 타자기 같은 아날로그 기기들이 한국화에서 자주 그려지던 전통적 이미지들과 결합되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카세트테이프의 라벨, 타자기에서 나오는 종이, 필름카메라의 기록 면에는 화훼도, 초충도, 일월오봉도 같은 전통적 상징이 배치된다. 장수를 상징하는 나비, 부귀영화를 나타내는 모란, 균형과 안정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는 단순히 과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상징들은 현대인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소망과 염원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상징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전통적 상징과 아날로그 기기들이 결합된 작품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마음의 균형을 되찾는 경험을 제안한다. 필름카메라로 신중하게 찍은 사진이나 카세트테이프를 되감아 음악을 듣는 행위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아날로그 기기들이 주는 불완전함과 느림은 빠른 세상 속에서도 우리를 안정시키는 작은 의식과도 같다. 또한 삶의 순간순간에 주의를 기울이고 정성을 쏟는 과정이다. 이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디지털 속도에 잃어버린 감각과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다.
진채화 작업 또한 아날로그 기기와 닮아 있다.
진채화는 먹선으로 초를 뜨고, 여러 번의 바림을 통해 은은한 색감을 쌓아가며 완성된다. 이 과정은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만큼 신중함과 인내를 요구한다.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은은한 색감과 차분한 감정은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관람자에게 안정감과 치유의 시간을 제공한다. 특히 진채화에서 사용되는 은은한 색감과 자연 소재의 묘사는 디지털의 선명함과 대비되며,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으로 관람자에게 마음의 여유를 선사한다. 이러한 작업 과정은 정성과 시간을 필요로 하며, 디지털의 빠름과는 대비되는 차분함을 보여준다.
‘아날로그 시리즈’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거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통 이미지와 아날로그 기기의 결합은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잃어버린 여유를 되찾는 여정을 상징한다. 과거 사람들이 그림 속에 자신의 염원을 담아냈듯, 이 시리즈의 작품 속 상징들은 현대인의 소망과도 연결된다. 장수를 상징하는 나비, 부귀영화를 나타내는 모란, 균형과 조화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는 단순히 과거의 상징적 의미에 머물지 않고 현대인의 삶과도 깊게 연결된다. 나비는 변화와 성장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회복의 상징이다. 힘든 직장 생활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순간, 또는 육아의 어려움 속에서도 작은 성취를 통해 자신감을 얻는 과정이 나비의 상징성과 맞닿아 있다. 모란은 화려한 외형 속에서 삶의 풍요와 성취를 상징하며, 현대인의 바람 속에서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의 기쁨, 또는 가족과 함께하는 소소한 행복처럼 여전히 유효한 희망과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일월오봉도는 왕의 권위와 안정의 상징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조화로운 관계와 균형 잡힌 삶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읽힐 수 있다. 바쁜 업무 속에서도 친구나 가족과의 시간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 또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도 마음을 다잡고 자신만의 중심을 찾으려는 태도가 일월오봉도의 안정된 구도와 연결된다. 이러한 상징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잃어버린 여유와 안식을 찾도록 돕는다.
디지털의 빠른 속도와 무한 경쟁 속에서 일상이 지나치게 빨리 흘러가며 우리는 쉽게 소진된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잠시 멈추어 변화와 회복의 가능성을 떠올리는 시간은 우리의 삶을 다시 충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모란이 뿌리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것처럼,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성취가 아닌 내면의 풍요로움을 찾아가는 여정이 중요하다. 일월오봉도의 안정된 구도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 중심을 잡으며 균형을 유지하려는 현대인의 노력을 반영한다.
이처럼 전통적 상징과 현대적 맥락이 결합된 작품은 단순히 과거의 아름다움을 되새기는 것을 넘어, 현대인의 삶 속에서 잃어버린 여유와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여정을 제안한다. 작품 속 각 상징은 관람자의 마음속에 오래된 추억과 현재의 소망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마치 한적한 길에서 우연히 만난 오래된 서점처럼, 작품은 관람자에게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하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벼운 변화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하고, 모란의 풍요로움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를 넘어 내면의 깊이를 일깨운다. 또한, 일월오봉도의 조화로운 구도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도 중심을 잡으려는 현대인의 노력에 감각적 안정을 더한다.
작품은 관람자에게 바쁜 삶 속에서도 자신만의 쉼터를 발견하고, 그 순간만큼은 마음의 평온과 여유를 온전히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시리즈가 그러한 감정과 경험을 통해 관람자의 삶 속에서 지속적인 위로와 영감을 선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COMMA
모든 사람은 경제적인 문제, 육아, 직업 등 다양한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 나 역시 삶의 굴곡과 어려움에 직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릴 적에는 동화 속에서처럼 행복한 결말을 상상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런 상상이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삶 속에서 나는 잠시라도 현실에서 벗어나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갈망했다. 비현실적인 이상향인 유토피아 대신, 현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의 쉼터를 찾았다. 그 도피처가 바로 그림이었다.
푸코가 이야기한 '헤테로토피아'는 나에게 그림으로 구현되었다. 그림은 나의 마음과 감정을 표현하며,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치유의 역할을 한다.
마치 뾰족한 물건에 닿으면 터질 것 같은 고무 튜브처럼 연약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를 안락한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그래서 작품 속 유니콘 튜브는 작가 자신이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지친 사람들의 상징이다. 바쁜 일상 속 스트레스와 작은 자극에도 무너질 것 같은 연약함. 그러나 공기를 채워 넣어 다시 부풀어 오르는 튜브처럼, 우리는 휴식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는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고자 한다. 삶의 어려움과 피로를 잠시 내려놓고, 스스로를 회복시킬 수 있는 공간을 갈망한다.
콤마 시리즈는 세 가지 형태로 변화하며 발전해왔다.
첫 번째 시리즈에서는 유니콘 튜브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물건과 함께 등장한다. 이 물건들은 손때 묻은 오래된 책이나 간직한 컵처럼 평범하지만, 우리에게 편안함과 위로를 주는 매개체다. 유니콘 튜브는 이런 물건들과 함께 작은 안식처를 만들어가는 모습으로, 삶의 고단함 속에서 평온함을 찾는 순간을 담아냈다.
작가는 첫 번째 시리즈를 통해 일상 속 물건들이 전하는 위로를 표현했다. 이후 시리즈는 이를 넘어 더 넓은 풍경 속으로 시선을 확장한다. 두 번째 시리즈에서는 수영장, 맥주 거품, 바다로 향하는 기차 등 다양한 장소에서 유니콘 튜브를 배치하며, 일상을 벗어나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안식처를 표현했다. 또한, 빈티지한 프레임 속에 담긴 풍경들은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장면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든 돌아가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현재 제작중인 시리즈에서는 자연과의 연결을 통해 메시지를 더욱 깊이 확장한다. 각 식물이 가진 다양한 상징성은 유니콘 튜브와 어우러져, 사람들의 내면 깊은 감정과 관계를 비추며 삶의 굴곡을 이겨내는 힘을 전달한다. 예를 들어, 선인장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강인하게 자라나는 생명력을 상징하며, 유니콘 튜브는 그 곁에서 스스로 안식처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선인장의 강인함은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묵묵히 견디고 회복할 수 있음을 일깨우며, 마음을 내려놓고 작은 쉼터와 여유를 발견하게 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작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 우리가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안식처와 휴식처를 이야기한다.
콤마 시리즈는 단순히 여유를 찾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자연과 연결되며 평화와 치유의 여정을 확장하고 있다. 작품은 관람자에게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쉼과 위로를 선사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현대인의 삶에서 안식처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예를 들어, 꽃밭 속 유니콘 튜브는 생명력과 아름다움 속에서 위안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며, 선인장 위의 튜브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인내와 강인함을 상징한다. 때로는 동화 속 수박 수영장에서 느꼈던 즐거움처럼, 우리의 복잡한 감정을 해소하고 마음을 다독이는 공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유니콘 튜브가 있는 다양한 장소와 오브제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짧지만 소중한 평화를 제공한다.
유니콘 튜브는 다양한 상황과 오브제 속에서 휴식과 안락함을 찾고 있다. 작품을 그리며 나는 매 순간 고민한다. "사람들에게 감정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상념을 내려놓고 쉼을 얻기를 바란다. 마치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느꼈던 아늑함처럼, 특별한 안식처에서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