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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Z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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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나의 우주 


"예술은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예술은 감정을 통해서만 작용할 수 있다." 

"좋은 그림은 영혼을 울려, 내적으로 충만한 삶을 이끈다."


칸딘스키


 


1. 왜 우주를 그리는가?


나의 감정은 우주로 인해 흔들린다. 우주는 나의 욕망, 호기심, 환상들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대상이며, 내 영혼을 흔들어 내적인 열정과 자유분방함을 이끌내는 공간이다. 어린 시절부터 우주에 대한 상상은 답답하고 혼잡한 지구의 삶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였다. 어른이 된 지금도 우주선을 타고 올라 우주를 직접 보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며, 자가용에 ‘cosmos'라 이름 붙여 하루하루 우주와 함께 지낸다. 그동안 우주에서 얻은 감정의 흔들림과 자유로움을 한지에 담아 관객과 함께 공명하고자 한다. 



2. ‘우주’연작의 대상


우주는 모든 것을 품고있으므로, 대상 또한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광대무변한 우주를 담기 위해서 주제나 스타일을 하나로 한정짓지 않고, 내가 받은 흔들림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대상과 기법으로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하는 8작품, <Fomalhaut B>, <우주괴석도>, <Orion Nebula_오리온성운>, <삼증_백록>, <노랑의 속삭임>, <죽음>, <엔트로피>, <Diamond>에는 괴석 3작품, 나무와 풀 2 작품, space 2작품, 광물 1작품이 포함되어있다. 가장 많이 포함된 괴석은 최근 가장 큰 관심사이다. 옛 선비는 돌에서 이상적인 선비의 모습을 보았다던 데, 나에게 괴석은 오랜시간동안 빚어진 그 기이한 형태가 자연의 이치, 태고의 견고성을 간직한 산수 자연의 정수이다. 작지만 모든 우주를 담고 있는 괴석이므로, 괴석에 내재된 기운, 정신성을 표현하면서 우주를 나타내고자 했다. 


3.  작업의 주요 요소


<한지- 번짐과 쌓음>


한지는 닥이 뭉치고 쌓여 만들어진다. 한지에 닥은 균일하게 분포하지 않아서, 뭉친 부분과 적은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여기에 곱게 갈아 물에 갠 염료를 칠하면, 한지는 물감을 흡수하며 점차 색에 물들고 번지게 되는데 이때, 닥이 뭉친 부분은 더 많이 흡수하여 색이 진하고 닥이 적은 부분은 더 많이 번지므로 색이 연하다. 작가의 통제를 벗어난 이 우연적인 흡수와 번짐을 뜻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한 겹 칠하고 그 우연이 끝나길 기다려 내 붓이 시작하고 한지가 끝맺을 결과물을 기다린 후, 다시 한 겹 또 한 겹 쌓아간다. 평면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상상치 못할 깊이가 있는 우주처럼. 우연히 만들어져 질서를 갖춘 우주처럼. 한지에 겹겹이 쌓여 표현된 나의 [우주]는 실제 우주와 닮아 간다.

 

<색 – 심리와 에너지>


우주는 에너지가 폭발하고 뭉쳐 만들어졌다. 에너지는 균일하게 분포하지 않아서, 에너지는 어떤 곳엔 뭉쳐있고 어떤 곳은 적다. 뭉쳐진 에너지는 물질로, 빛으로, 그 외 다양한 ray들로 퍼져나간다. 우주엔 온갖 에너지들이 날아다니니 우주를 상상하는 내 감정도 에너지에 휩쓸려 그렇게도 흔들렸다. 


이 감정의 흔들림을 표현하려면 한지에 에너지를 담아야만 한다. 움직임을 이끌어내야한다. 내가 선택한 에너지는 색이고 색은 지구인의 공통적인 언어이면서도 모든 색깔에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의미가 있으며 우리의 뇌에 특별한 영향을 미친다. 색으로 기초작업을 하면 나머지 형, 선 등도 스스로 에너지를 내며 서로 영향을 준다. 


평면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우리의 눈은 파랑을 보고 노랑을 보고 녹색을 보고 형태를 보며 자유롭게 움직인다.  우리의 시선은 여기저기를 순환하고 연결한다. 색을 응시했을 때 심리적인 효과가 마음에 나타난다. 이렇게 작품을 보면서 생기는 심리적인 동요는 연상 작용을 이끌어내면서 각자에게 색이 상징하는 의미들을 이끌어 낸다. 예를 들어 붉은색이 퍼지는 효과를 보면서 따뜻한 불꽃이면서 동시에 고통의 피로 혐오의 색이 되기도 한다. 색은 각각 상응하는 물리적인 감각을 일깨우고 이 감각은 우리의 영혼에 영향을 준다. 내 붓이 시작하고 한지가 완성한 색이 당신의 우주를 움직이기 충분한 에너지를 갖길 기대한다.



『노랑은 따뜻한 색인데 이를 차갑게 만들려면 파랑을 섞어야 하는데 파랑이 노랑에 제동을 걸어 노랑에 파랑을 첨가하면 2개의 대립적인 운동이 서로 무마되고 정지의 상태가 되어 초록이 생겨난다. 그러면서 노랑은 녹색이 되어 수평적인 운동을 잃게된다. 하지만 초록에는 어떤 생명적인 가능성이 있다. 초록을 구성하는 노, 파의 2가지 색은 활동적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운동을 가지고 있고 이 운동의 성격에 따라 색채의 정신적 작용을 일으킨다. 하지만 초록은 어느 쪽을 향해서도 운동하지 않고 여운을 만들지 않고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다. 피곤한 인간과 영혼은 녹색을 보면 편안해 지지만 휴식의 시간이 지나면 지루해 진다.  노랑은 정신적인 따듯함을 발산하고 파랑은 감정을 가라앉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면 초록은 지루한 효과를 가져온다.』



      칸딘스키 ’예술에있어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