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n Da Nim 


Collage & Installation


ABOUT 





| 윤다님 |  





자극의 역치가 낮은 사람이다. 대신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다. 일종의 방어기제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쉽게 잊히지 않는 날들이 있다. 누군아의 마지막 길에 인사를 다녀왔을 때이다. 서른 남짓 살면서 여섯 번의 장례식을 경험했다. 아직 횟수를 셀 수 있을 정도기도 하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그 향냄새와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가 선명하다. 장례식을 다녀오면 며칠 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너무 많은 생각이 두서 없이 떠올라서 힘들었다. 마음이 좀 가라 앉고 생각이 사그라들면 여지없이 ‘인생 참 허망하다’는 문장으로 귀결되었다. 성별이나 나이와 무관하게, 누구의 삶이든 끝이 있구나. 자의든, 타의든, 그 어떤 것도 아니든, 결국에는 끝이 나는구나. 나의 20대는 답을 구하기 어려운 질문으로 가득했다.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아등바등 열심히도 사는 이유가 무엇일가, 삶의 의미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있다면 도대체 어떻게 찾을 수 있는 것일까…지금은 더 이상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방향의 답을 발견한 것이다. 삶의 의미는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하나씩 하나씩 채워가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사실은 너 무나 살고 싶은, 이왕이면 잘 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나름의 답을 구했지만, 여섯 번의 개인적인 경험과 뉴스로 접하는 일련의 사건사고로 무기력에 빠지는 것 은 어쩔 수 없었다. 애도와 분노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못 견디게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가능한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려 했다. 사이사이 애도하고 분노하면서. 어떤 일이든 완전히 잊을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무뎌졌다. 빈도가 준 애도와 분노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앞으로도 때때로 짙은 무기력에 빠 지기도, 모든 의욕을 잃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일상을 흔드는 무력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미를 채우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살 것이다. 주로 중고잡지 등 종이 재질을 사용하는 평소 스타일대로, 이번에도 그랬다. 중고서점에서 구한 도자기 만드는 법 을 소개하는 잡지부터, 웨딩잡지, 패션잡지와 유럽여행 중에 생긴 영수증이 주재료가 되었다. 타원형의 작품을 제 외한, <영수증-꽃> 시리즈의 작품은 배경도 새것이 아니다. 전시 책자와 카드사 안내문 등이 배경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작품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도자기-꽃>, <사람-꽃>, <영수증-꽃>. 전체를 아우르 는 제재는 ‘꽃’이다. 지지 않는 꽃은 없다. 때가 되면 피고, 때가 되면 진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의미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하는 어떤 모순, 또는 삶을 향한 의지를 보여주는 매개물로 꽃을 선택한 이유다. 生 이 있으면 반드시 死가 있다는 누구도 부정 못하는 진리를 가장 아름답게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꽃이라 생 각한다. 흙을 빚어 만든 도자기는 겉보기에 참 단단해 보인다. 하지만 떨어뜨리면 산산조각 난다. 이미 깨져버린 도자기는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사람의 손을 거치고 뜨거운 인고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흙에서 도자기가 되었지만, 찰나의 실수로 깨져버린 도자기는, 그 순간 수명이 끝나버린다. 이번 전시는 어쩌면 나의 선언 같기도 하다. 일상을 흔드는 무력감에 빠지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삶의 의미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살 것이라는. 그래서 아주 직접적으로 ‘사람’ 이미지를 활용하기도 했다. 영수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사는 나의 상징물 같다. 진짜로 인생이 허망하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렇 게 많은 소비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하루 새로운 욕망이 생겨나고, 그에 따라 새롭게 소비한다. 영수증은 삶을 향한 의욕의 부산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