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JI SEON


Artist  Statement  




Zitadelle

  

 치타델레(Zitadelle)는 요새, 성채 등을 뜻하는 의미로, 물리적인 방어 시설을 넘어선 정신적 장소를 상징합니다. 


이는 개인이 내적 평화를 유지하고 외부의 혼란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괴테는 치타델레를 내면의 성찰과 자아 성장을 위한 요새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감정과 생각, 기억의 흐름을 담은 공간을 BLUE FOREST라 이름 붙이고, 숲의 형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숲은 억눌린 감정을 고백하고, 기억의 파편들이 모인 상상의 공간으로 현실과는 다른 색과 형상으로 그려집니다. 

우리의 기억은 감정에 따라 왜곡되고 불분명하게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Zitadelle는 숲의 보다 구체적인 기능을 의미합니다. 감정의 동요로 끊임없이 소란스러운 숲 속에서 평안을 찾고, 회복을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치타델레는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실제 발 디딜 수 없는 내면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곳입니다.


작가노트

  

 우리 모두에게는 숲이 있습니다. 이곳은 나만의 비밀과 상념, 환희를 털어놓는 곳으로 저는 여기를 Blue forest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Blue'는 우울과 안정의 상반된 정서를 의미합니다. 숲에는 슬픔의 밑바닥까지 닿아있는 소란스러움, 그리고 평안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 속 대나무 숲과 같아서, 나무와 풀이 자라는 숲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판화에서 회화로 매체를 변화하며 사물의 윤곽을 찾아 그리는 작업을 지속해왔는데, 자연물의 형태를 평면으로 시각화하는 과정은 자연이 만들어놓은 선을 화면으로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공간 속 실재하는 나무를 한정된 평면에 그리면, 나뭇가지는 고유의 선으로 화면을 분할하고, 풀의 테두리는 공간을 저마다의 크기로 나누는 경계를 만듭니다. 

여기에 어느 날 깨달은 생각, 소설 속 한 장면,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사건 등등을 주관적인 조형언어로 채워 넣습니다. 

  

 작품 속 풍경은 실존하는 자연과는 다른 색으로 표현됩니다. 혹은 자연의 어떤 부분으로 인식되지 않는 기하학적인 형상으로 구성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기억은 현실과는 다르게 왜곡되고 선명하지 않은 감정으로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품 속 자연물은 분명한 경계로 구분할 수 없고, 자연을 닮았지만, 담고 있는 감정과 개인의 역사에 따라, 자연답지 않은 색으로 완성됩니다.

  

 숲을 그리는 과정은 기억의 파편과 감정, 그리고 감각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나 그 도착 지점은 현실 너머에 있습니다.

 Blue forest는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실존하지 않는 숲입니다. 

자연의 모습에 감정의 흐름에 따라 주관적인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화는 어느덧 슬픔이었음을 분노는 시기와 질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숲은 숨겨둔 깊은 마음을 발견하게 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참 이상하고 기묘한데, 이 사실을 나만 알고 있는 것이 몹시 두렵다고. 

나의 진심을 꺼내어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숲. 그곳에서 삶은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