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JAE YUN
Artist Statement
인간은 생명은 모든 것에 평등하다고 정의한다. 그러나 생명의 평등은 인간이 정한 인간만의 평등이다. “생명은 모든 인간에 공통으로 주어진 것이며 인간이 가진 모든 권리는 생명을 전제로 생겨났다. 세계 어느 나라든 헌법에는 ‘누구든지 생명의 권리를 가진다.” 라는 규정이 있다. 이러한 문장을 보면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이며 곧 ‘생명=인간’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생명=인간’을 견고히 하기 위해 그것을 토대로 권력과 연관시켜 신을 만들어 냈다. 실체적인 이미지가 없고 믿음을 통해 현존하는 신의 존재는 인간이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신을 만듦으로써 인간들은 자신의 권능과 권위를 재현하고 증폭 되어 자신의 몸을 통해 신의 실체를 만들어 다른 생명에 대해 존재의 유무를 재단할 수 있는 권한을 자신들에게 부여했다는 것이 적확하다. 먹고-나아감-삶의 연장-뿐만 아니라 인간이란 종의 특성과 관점을 기반으로 권력적인 형태의 음식이 발현된다. 이는 고대인들로부터 이어져 온 신의 음식은 인간이 키우는 가축들의 희생을 통해 불에 탄 동물의 냄새와 육질을 즐겼으며 현 권력자들에게 낯설고 희귀한 재료인 고급 음식이 집중되어 장소에 맞는 옷차림과 식사 예절, 고급음식, 사회적 지위 등이 식문화의 격차를 보여준다.
즉,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의 권력구조들은 음식을 매개로 극화되어 보여준다.
이로써 우리는 ‘무엇’인가를 섭취함으로써 생명의 시간을 연장한다. 즉, ‘무엇’을 섭취한다는 것은 다른 생명의 시간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음식을 통해 얻은 것은 생의 시간뿐만 아니라 탐욕으로 이어지는 생리적 욕구이다. <매슬로우의 욕구계층이론>에 따르면 기본적인 신체적 욕구라고 알려져 있으며 음식, 배설, 자극 등을 포함하며 인간은 이러한 기본적인 생리 욕구가 충족되어야만 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욕구를 바탕으로 모든 생명을 마치 ‘신’처럼 그것들의 죽음과 삶의 시간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며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다. 음식재료인 그것들은 조리 과정에서 마침내 본래의 형태를 알 수 없는 변형되고 인간이 인식하지 않거나 못한 최후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인간들은 그것들의 죽음을 섭취함으로써 포식자의 안락함을 만끽하며 생명의 시간을 연장한다. 즉, 음식은 죽음의 연장을 위한 도구와 죄악의 유혹적인 본성을 갖고 있는 야누스의 얼굴이다.
이러한 주제를 소화시키기 위해 만화적 기법인 선의 사용과 섹션을 나눈다. 이는 음식 재료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모든 생명의 먹고 나아감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죄스럽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함으로 죽음을 한 발 떨어져서 하는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디 음식은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산업의 형태이자 인간이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소재이다. 그러므로 아크릴이 가지고 있는 상업적 이미지와 재료의 산뜻한 특성을 이용하여 만화적인 기법으로 음식 재료인 그것들의 죽음을 표현한다. 특히, 음식에 나타날 수 없는 높은 채도이자 가벼워 보이는 형광색을 사용한다. 이는 일상의 음식을 의미와 무게를 찾지 않은 채 반복적으로 먹는 것을 의미하며, 본질적인 요소인 생존을 넘어서 탐욕의 영역임을 보여주는 ‘즐기고 먹는다’라는 행위를 강조한다. 또한 음식 재료인 그것들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자각하지 못한다는 표현의 의도와 음식은 생명이 정물로 변화한 것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무게가 느끼기 힘들기에 인위적인 형광색을 사용하여 강조한다. 이를 통해 죽음과 음식이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은 음식, 식물, 동물들은 인간이 아닌 비(非)생명체임으로 감정이입의 감응력이 낮아진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먹는 권력자이기 때문에 음식 재료인 그것들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공감과 감정이입이 아닌 상황을 생각하게 되어 그것들의 생명일 때 죽음으로까지의 과정을 느끼고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는 앎의 과정에서 감응하게하고 문제를 인식하게 한다. 그리하여 관객 자신만의 의미와 새로운 가치를 만들게 하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