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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희 |@xrenton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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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업은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단계에서 시작해 조금이라도 더 접근하려고 애쓴 작가노트 결과물이다. 나의 과거 작업들과 습작들을 보면 가족을 소재로 한 작업들이 많이 있었다. 작업 구상단계에서 가족이라는 의미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이야기 혹은 나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내가 속해있는 가장 1차적인 집합을 그 시작으로 삼았던 것 같다. 가족이 소재가 된 작업들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라 스스로 함몰되는 느낌을 종종 받기도 했다. 나는 점차 범위를 넓혀 역사라고 부를 수 있는 혹은 기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한국의 근대사, 현대사에서 일어 난 일들, 기록되어있는 역사와 그 속에서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 주목했다. 쓰여진 역사에 속해있는 개인 각각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 기록된 역사는 어떠한 차이가 있고 거리가 얼마이며 그 경계는 어떤 모습인지 탐구하고자 했다. 역사적으로 특정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 예를들면, 학살이나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이 묻혀있던 장소에서 나는 사진을 찍기도 했고, 아무런 행위 없이 머물렀다. 이 곳에서 일어난 일은 어쩌면 다행히도 생존자가 있었고, 목격자가 후세에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주관적인 목격담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언제 이 사건이 일어났으며 무슨 일이 누구에게서 발생했고, 누가했고, 몇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라는 가정치와 실제 발견된 희 생자의 사체수로 남아있다. 나는 숫자가 말하는 객관적인 자료, 기록된 시간이 말하는 것과 그들이 겪은 기억과의 사이에 있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개인의 역사와 기록된 역사와의 거리를 말하 고자 한다. 제주도에서 일어난 4.3 사건이 남겨 놓은 기억과 내가 밟고 있는 땅 위에서 느껴진 감정과 생각 을 가족과 여행하며 사진찍기도 했었고, 베를린 전쟁역사박물관 활주로에 놓여있는 냉전시대의 전투기들의 낡고 녹슨 표면을 시각화했고, 유년시절에 모았던 우표들 중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80년대 전두환 대통령의 우표들, 책상 위에 놓인 구겨진 종이들과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사진들은 나의 작업 의 큰 모티브가 되었다. 나는 내 머릿속에 부유하는 이미지들과 이미지들 사이의 거리, 그 거리의 경계의 두께를 시각화하고 이미지화 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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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진이라는 매체를 좋아하고 작업하고 공부했던 이유는 당연하게도 사진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특성 중 하나인 기록한다는 것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바르트가 말했던 것 처럼 어느 한 지점을 기록하고 새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가 말했던 사진은 기억을 회상하는 도구로써 존재를 인정하는 증표로서 의미를 다한다. 나 역시, 사진은 지나간 시간을 기록하여 파편적이고 희미하게 잊혀지는 기억을 잡아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기록’ 과 ‘기억’ 은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두 개념에는 이질적인 성질이 마주한다. 기록에는 이름이 붙는다. 숫자가 붙고 정확한 시간이 붙어있다. 기억은 그 언저리에 있다. 분명, 두 개념에는 경계가 있다. 내 머릿속에는 항상 하나의 사진이 분리 되어 하나는 내 눈앞에 있고 하나는 저 암흑 어딘가에 있다. 두 사진은 같은 크기의 사진인데 거리가 있어, 하나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다른 사진은 작아 보이기도 하고 크게 보이기도 한다. 그 거리는 내가 가늠할 수 없는 거리라 다가가기 어렵다. 그럼에도 내가 그 거리에 대하여 생각하면 거리의 두께가 보이고 그 두께에는 수 백 수 천의 경계가 그어져있다. 성질이 미묘하게 다른 것들이 붙어 있어 경계 가 생겨난 것인데, 칼로 물을 잘라 놓은 후처럼, 순간적으로 떨어졌다 붙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생각들의 징검다리를 이어주는 작업을 하고싶다. 나의 삶과 밀접하면서도 내가 가운데에 있고, 동시에 멀리서 떨어져 바라보는 작업을 다양한 매체로 확장시키고 싶다